칼럼

  • 홈 >
  • 칼럼 >
  • 칼럼
칼럼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정철진 2023-03-09
  • 추천 0
  • 댓글 0
  • 조회 420

http://juch.onmam.com/bbs/bbsView/49/6220862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삼상21장1~11절

 

20장42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요나단은 자기가 살고 있던 기브온 성읍으로 돌아간다.

그럼 다윗은 어디로 가면 될까? 어디로 가는 것이 최선일까?

나는 라마나욧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라마나욧은 어떤 곳인가? 

성령의 은혜로 안전한 곳이다. 자객들이 와도 힘을 쓰지 못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땅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윗은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가?

1.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다윗이 놉으로 간다.

다윗은 이후로 도피생활을 하는데, 라마나욧으로는 가지 않는다.

기브아→ 라마→ 놉→ 가드→ 아둘람→ 엔게디→ 모암→ 십→ 마온→ 엔게디→ 바란광야→ 갈멜→ 헤브론→ 십→ 가드→ 시글락

 

다윗의 도피 장소들을 보면서 ‘많이도 헤매고 나녔구나.’

그런데 다윗은 라마나욧으로 가지 않는다.

이리 저리 해맸지만 라마나욧으로는 가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다윗에게는 라마나욧으로 가는게 최선이다. 

영적 지도자가 있고, 영적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그러나 왜 돌아가지 않았나? 

자존심 때문 아닐까?

 

다윗이 라마나욧을 떠날 때 도망갔다고 한다. 

불평원망이 들어오자 사무엘이 ‘기도하라. 예배하라,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다려라’ 

그래서 듣기싫어서 요나단에게로 도망갔다.

도망갔기에 자존심 상해서 이리저리로 저렇게 헤매고 다니지 라마나욧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창세기 12장에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과 롯은 같이 떠났다. 

조카 롯에게서 가장 좋았고,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삼촌 아브라함과 같이 있던 시기이다.

그런데 창세기 13장에서 분쟁이 일어난다. 

그래서 양측이 갈라지게 되는데.

얌체 같이 조카인 롯이 먼저 좋은 땅을 발견하한다. 

그곳이 소돔과 고모라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그의 삶이 좋았는가? 지옥 같았다. 

 

베드로후서에 보면 ‘그 땅에서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밤낮으로 고통 당했다’고 기록한다.

롯은 행복하지 않았다. 

말씀을 읽을 때마다 궁금하다. 바보 아닌가?

그럼 아브라함에게 돌아가면 되지? 그런데 가지 않는다. 

 

다윗이 라마나욧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가지 않는다. 

롯도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인간들은 바보같다.

인생이 힘들고, 미련없이 느낄대, 하나님께로 달아가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는다.

  

다윗과 롯을 통해 여러 가지 메시지를 얻는다.

‘내가 거하는 땅, 나의 라마나욧을 떠나는 것을 조심해야한다’ 

그 땅을 떠나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니다. 은혜의 땅 쉽게 떠나면 사실 쉽게 돌아오지 못한다. 

 

나는 뜬구름 잡는 설계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나는 우리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성도들이 목사를 힘들게 하는게 뭔가? 은혜 봤다가 시험들면 목사 욕하고 교회를 떠난다. 그리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그리고 은혜 받는 곳으로 못 돌아온다.

 

‘내가 은혜받는 곳이 있다면 쉽게 떠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성도들은 말할 것없이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작은 시험 찾아오면, 목사가 자기에게 정말 진실로 생명의 말을 조언하면 기분 나빠서 다음날부터 안나온다.

신앙생활 하는데 자존심 버려야 한다.

그래야 산다. 

자존심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하나님 떠나는 사람많다.

 

다윗이 자존심 때문에 라마나욧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롯이 자존심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에 자기 자존심 버리고 은혜에 땅으로 돌아가 살아난 사람이 한 사람이 있다.

탕자가 그랬다. 

그는 은혜의 땅을 떠났다. 그가 아버지 집에 있을때 제일 좋았다.

떠났다가 다 죽게되었을 때, 그가 자기 자존심 버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살았다.

탕자가 돌아간 것처럼 다윗이 라마나욧으로 돌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21장 후반에 보면다윗이 미친척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롯의 마지막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가? 

딸들이 자기한테 술을 먹이고 근친상간을 통하여 자녀들이 태어나다

그가 돌아 같다면 탕자의 아버지가 잔치를 베풀듯 아브라함이 잔치 베풀어 줄 것이다

딸 남편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집에 318명 있는데... 그렇지 않는가? 다 할례 받은 신앙의 용감한 청년 318명 있는데...

거기로 가면 되는데... 

거기 가지않고 딸들이 근친상간으로 모압과 암몬을 낳는다.

신앙 생활하는데 자존심 버려야 한다.

 

다윗이 자존심 때문에 라마나욧으로 가지 못하고 놉으로 갔다.

그리고 놉에는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었다. 

1.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다윗이 이런 생각하지 않았을요? 

“아니, 사무엘만 목사야, 아히멜렉도 목사잖아.”

“목사가 사무엘 하나만 있는게 아니야.”

사무엘상 22장에 거기에 제사장 85명이 거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 사무엘과 아히멜렉이 다르다.

사무엘은 한나가 기도로 낳은 아들이다.

그러나 아히멜렉은 저주받은 엘리 제사장의 후손이다. 

집 안에 흐르는 영적 기운이 다르다.

 

1절을 보면 두 사람이 다윗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사무엘이 다윗을 만났는데 ‘떨었다’라는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 오늘 아히멜렉이 다윗을 만날 때 성경을 보면 아히멜렉이 떨었다고 한다.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였다고 한다.

성도가 목사를 찾아왔는데, 목사가 덜덜덜 떨었다.

이상하다.

 

성경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매우 중요한데, 성경의 두려움 이라는 감정이 제일 먼저 어디 나오느냐? 창세기 3장에 나온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났을 때 두려웠했다.

창3자10절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을 떠난 상태의 감정이, 두려움이다. 

구약성경에서 많은 경우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히멜렉 제사장이 성도 만났는데, 다윗 만났는데... 떨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또한 다윗이 사무엘을 만났을때는 영적인 것을 주었다. 

그런데 아히멜렉은 무엇을 주었는가? 빵을 주었다.

다윗이 먹을 것을 달라고 하니까? 빵을 주었다.

3.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4.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빵을 주었다.

다윗이 무기를 달라고 하니까? 골리앗의 칼을 주었다.

8.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9.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성경 어디에도 다윗이 아히멜렉을 만나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는 말이 없다.

한마디로 아히멜렉 목사는 용도주고 밥도 사주는데, 

영적인 것은 주지 못한다.

  

사무엘도 목사고, 아히멜렉도 목사다. 다 같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영적인 것을 주는 목사가 있고, 영적인 것을 주지않고 빵과 무기만 주는 목사가 있다.

기도할 수밖에 없다.

진짜 무서운 말씀이다. 

 

왜 아히멜렉은 영적인 것을 주지 못하는가?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것만 줄 수 있다.

없는 것은 절대 못준다. 

사무엘은 자기안에 영적인 부유함이 있기 때문에 자기를 찾아온 다윗에게 영적인 필요를 채워준 것이다.

 

20장에서 요나단처럼 위로하지 말고 진짜 사무엘처럼 성도들을 기도하고, 영적으로 이끌어야겠다고 말씀을 받았다.

21장에서 절대 아히멜렉 같으면 안되겠구나 생각한다.

우리 교회 교역자들, 우리교회 성도들역시 가정에서 직장에서 다 리더들이다. 

사무엘 되시길 축원한다. 

영적인 공급을 해야 한다.

빵과 칼만 주면 안된다.

이 땅은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 문들어졌다.

영적인 능력, 영적인 공급이 필요한 시대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치매가 걸려도 하나님은 기억합니다 정철진 2024.03.20 0 45
다음글 가던 길을 잠시 멈추어서다 정철진 2022.03.14 0 7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