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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을 잠시 멈추어서다 정철진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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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을 잠시 멈추어서다

(눅18:31~43절)

 

예수님과 그의 제자일행은 길을 가는 중에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누가복음 18장 31절에 의하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길 가는 중에 여리고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 때 길가에 있던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마가복음에 의하면 바디매오) 예수를 향하여 소리쳐 외친다. 

자신의 눈을 고쳐 달라고 한다. 

 

35.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왕의 입성으로 오해 하고 있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자신들도 지금까지의 고생을 벗어나서 이제 한 몫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기에 빨리 예루살렘에 도착해야만 했다. 

걸음을 재촉한다.

 

예수님은 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하셨는가?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주셨다.

31.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시는 이유는 십자가에 죽기 위함 이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말을 해주어도 알지 못했다.

신앙은 나의 생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각을 따라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 가득차있으면 나의 생각에 맞는 말만 들린다. 

순종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지 않고, 내가 하기 싫은 그것을 행하는 것, 그것이 순종이다.

 

제자들의 생각은 온갖 이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기만하면 세상이 뒤집을 질거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질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바쁜 여행 일정에 나타난 바디매오의 존재가 그들에게는 한 없이 귀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디매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다.

39.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어떤가?

40.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이렇게 바디매오를 바라보는 제자들과 군중들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을 달랐다. 

바디매오의 외침 앞에서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바디매오를 향하여 “조용하라!”고 나무라는 제자와 군중들의 모습과 “걸음을 멈추시는” 예수의 모습을 날카롭게 대조하고 있다. 

 

마치 오늘 이 말씀을 읽고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 너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라고 묻고 있지 않은가?

바디매오의 외침을 들으면서 우리는 어떤 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

 

우리 역시 예루살렘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지 않습니까?

각자, 자기만의 예루살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걸음을 재촉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성공하고 싶어 하고, 그리고 성공하기 위하여 곁길로 가지 않으며, 가던 길을 멈추지 말 것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또 그래서 나름대로 성공을 이룩하기도 했다. 

한국의 놀라운 경제발전은 이러한 길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달려간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교회 성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2천 년 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루살렘성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멈춤과 쉼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들에게 바디매오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바디매오의 외침이 귀에 들릴 리가 없다. 

 

왜 오늘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 

멈춤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우리들의 모습 가지고서는 바디매오가 눈을 뜨는 기적을 이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걸음을 멈추셨다. 

가시던 걸음을 멈추니까 예수님의 귀에 바디매오의 외침이 들려온다. 

멈춤 없이 바디매오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의 애타는 외침과 호소에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시는 그 예수님의 마음이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만드는 기적을 발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는 이 같은 예수님의 걸음 멈춤이 많은 사람들을 살렸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눅8:48 제사장 야이로의 딸의 병을 고쳐주시기 위하여 길을 가던 예수님은 그의 앞에 나타난 혈루병을 앓고 있던 한 가련한 여인의 호소에 가시던 걸음을 멈추신다.

그리고 그녀를 치료해 주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러가.” 

 

요5:8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동안이나 누워 지내던 사람,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사람 앞에서 걸음을 멈추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셨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예수님은 “이웃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누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인가 그래서 결국 영생에 이르게 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다. 

사마리아 사람이 좋은 이웃이 되어서 결국 영생에 이르게 된 것은 어떤 이유인가?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그렇다.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가 혹은 그렇지 못한가가 그들에게는 영생의 갈림길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이다. 

 

영생을 얻기 위하여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부지런히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옮겼다. 

그런데 멈추지 않은 그들은 결국 영생에 도달하지 못 했다. 

그 반면에 걸음을 멈추고 강도당한 사람을 돌보아 주었던 사마리아 사람은 영생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살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순간이다.

  

결국 예수님의 발걸음 멈추심이 많은 사람을 살게 하셨고 우리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 

2천 년 전에 그러하셨듯이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보시고 걸음을 멈추신다. 

그리고 우리의 속 사정에 귀를 기울이신다.

“주님, 당신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 당신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계십니다. 

 

그럴 때 기적이 일어났다.

41.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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